질문: 무아라면 무엇이 다시 태어납니까?

답: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르면 아라한이 될 때까지 재생의 순환은 계속됩니다. 아라한만이 끝없는 생사의 순환인 윤회의 바퀴에서 완전히 벗어납니다. 부처님께서는 무명에 의존하여 일어나는 갈애 때문에 이 순환이 계속된다고 설명하셨습니다.

저 또한 한때 ‘자아가 없다면 어떻게 다시 태어날 수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고민했습니다.

몸과 마음은 무상하기 때문에 무아입니다. 수행이 깊어지면 몸과 마음이 끊임없이 변한다는 것을 직접 경험합니다. 너무나 빠르게 변하여 알아차림이 따라가기조차 어려울 정도입니다. 몸과 마음은 괴로움을 수반하며 완전히 통제할 수도 없습니다. 깊은 통찰 수행을 통해 무상·고·무아에 대한 체험적인 이해가 확립됩니다.

그러나 무상하다는 것은 그 과정이 완전히 소멸되어 연결이 끊어진다는 뜻은 아닙니다. 몸과 마음은 계속 일어나고 사라지며, 앞선 조건이 새로운 조건의 원인이 됩니다. 따라서 영원하고 변하지 않는 ‘자아’는 없어도 원인과 조건의 연속성은 있습니다.

죽음에 이르면 이 육체는 멈추지만, 무명·갈애·업으로 인해 새로운 명색(마음과 몸)이 다시 일어납니다. 이렇게 영원한 자아가 없어도 연속성이 이어지는 듯이 나타납니다.

부처님께서 경전에서 자신의 전생에 대해 자세히 말씀하실 수 있었던 까닭도 여기에 있습니다. 영원한 아트만이 이 생에서 저 생으로 옮겨 다니기 때문이 아니라 원인·조건·업의 흐름이 계속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초기불교에서는 어떤 영속적인 존재가 다시 태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영원한 자아가 없어도 조건 지어진 과정의 흐름이 계속되면서 재생이 일어납니다. 윤회 속 재생이라고 부르는 것이 바로 이 조건 지어진 과정의 지속입니다.

겉으로 보면 불교에서 가르치는 재생은 아트만을 바탕으로 한 전통의 재생과 다소 비슷해 보일 수 있습니다. 둘 다 여러 생에 걸친 연속성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차이가 있습니다.

아트만을 바탕으로 한 체계에서는 영원하고 변하지 않는 자아가 한 생에서 다음 생으로 옮겨 갑니다. 그러나 부처님의 가르침에서는 몸·마음·업을 포함한 모든 조건 지어진 현상을 무상·고·무아의 특성으로 이해합니다. 따라서 불교의 재생은 ‘영원한 자아의 이동’이 아니라 조건 지어진 과정의 연속으로 이해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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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와 괴로움의 원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