낸시 어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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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물
나는 해탈과 열반을 체험했다.
네, 저는 해탈과 열반을 체험하였고, 제 경험을 여러분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만약 당신이 오랫동안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수행하였고 해탈과 열반에 이르는 명확한 길을 찾고 있다면, 이 책에 당신이 찾는 답이 있을 수 있습니다. 저는 20대 후반부터 근 40여 년을 해탈과 열반을 향해서 걸어왔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해탈과 열반이라는 최종 목표에 도달하는 명확한 경로를 찾지 못하고 길을 잃고 헤매고 있는 것처럼 느꼈습니다. 아마 책 또는 인터넷에 의존하여 수행을 고군분투하는 사람들 사이에 흔히 일어나는 상황이라 생각합니다. 다행히 저의 이야기는 해피엔딩으로 끝났습니다. 저는 수행 끝에 해탈과 열반, 즉 영원한 행복을 찾았습니다. 이 책이 여러분에게 이번 생에서의 자유와 행복, 그리고 사랑과 평온을 찾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2023년 봄, 저는 미국에서 『나는 해탈과 열반을 체험했다』 초판을 영어로 출판했습니다. 이 책에는 최종 깨달음에 이르기까지의 저의 수행 여정이 담겨 있습니다. 2024년에는 이 책을 한국어로 번역했습니다. 번역하는 과정에서 제3장을 새롭게 집필하고 ‘낸시 어코드의 팔정도 수행’이라는 제목을 붙였습니다. 제2판의 새로운 제3장에는 2022~2023년의 지도 경험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또한 이 판의 부록에는 제자들의 수행일지를 수록했습니다. 이 책에 소개된 두 수행자는 2023년에 성자의 첫 단계인 수다원에 들었습니다.
법담
유튜브
팔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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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40년을 넘게 외롭고 힘든 수행을 하며 많은 실수를 했습니다. 하지만 그로 인해 저는 사성제(교학)와 팔정도(수행)가 해탈과 열반에 필수고 전부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낸시의 팔정도 수행’은 제가 40년 이상 해온 여러 가지 수행 방법을 반조해서 누구나 원하면 시도할 수 있는 체계로 정립한 것입니다. 물론 이 시스템의 어느 것도 팔정도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면 왜 굳이 ‘낸시’라는 이름을 팔정도 앞에 붙이는지 궁금하신 분도 계실 겁니다. 그 이유는 이 방법이 제가 아는 바로는 현재 누구도 가르치지 않는 새로운 방법이기 때문에 그 점을 강조해서 한 번 시도해 보시라고 권하는 차원에서 제 이름을 붙였습니다.
이제 팔정도 수행 방법을 간결하게 요약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글의 중점은 수행이기 때문에 보다 더 자세한 교학적이고 학문적인 설명은 관심 있는 분께서 깊이 연구하고 음미하실 것을 권하는 바입니다.
깨달음을 얻고 나서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 팔정도는 정말로 미묘하고, 정확하고, 누구나 할 수 있고, 기가 막힌 시스템이다. 부처님은 대단하신 스승이시구나! 부처님 감사합니다. 부처님 은혜에 눈곱만큼이라도 보답하기 위해서 저는 남은 생을 수행 지도를 받기 원하는 사람에게 도움을 주면서 살겠습니다.”
팔정도는 팔리어로 팔성도, 여덟 가지 성스러운 도입니다. 팔정도에는 기초에서, 즉 우리가 사는 욕계에서 색계, 무색계, 세간, 출세간, 해탈, 열반 모든 것이 차례대로, 층층이, 원인과 조건으로, 때로는 모두 아우러져서 나타나기 때문에 팔성도라고 부르는 것이 마땅합니다. 하지만 오랜 세월 팔정도라 불리었기에 저도 여기에서 팔성도라 하지 않고 쓰여오던 대로 팔정도라고 씁니다.
팔정도는 시작은 범부, 마지막은 아라한으로 종결되는 수행 지침서입니다. 아라한이 팔정도이고, 팔정도가 아라한입니다.
팔정도에는 여덟 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바른 견해, 의도, 말, 행동, 생계, 정진, 마음챙김, 삼매입니다.
팔정도는 언제나 바른 견해로 시작합니다. 바른 견해에 범부가 팔정도로 들어갈 수 있는 첫 번째 문이 있기 때문에 바른 견해로 시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바른 견해에는 해탈과 열반까지, 즉 성자의 단계까지도 다 포함되어 있습니다.
또한 여기서 중요한 것은 범부가 팔정도의 첫 번째 문, 바른 견해를 닦는 방법을 아는 것입니다. 이제 범부가 할 수 있는 팔정도에서 벗어나지 않는 수행 방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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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잠자는 시간 외에 마음에서 일어나는 생각과 느낌을 알아차립니다. 알아차림이 자연스럽게 쉽게 될 때까지 계속합니다. 이때 생각이나 느낌을 그냥 알아차리기만 합니다.
위의 알아차림이 잘되면 그때부터 생각과 느낌의 뿌리에치를 이것은 탐심, 이것은 진심, 이것은 치심이라고 하나하나 구분해서 봅니다. 그것이 잘 되면 탐진치를 구분하지 않고 하나로 말 (내면의 언어)나 생각 없이 그냥 알아차립니다. 해보시면 탐진치라는 것은 갈애에 기본을 두어, 즉 내가 원하는 것, 못 얻으면 화나는 것, 그리고 그 가운데에 주인인 내가 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세상과 밀고 당기기를 하고 있는 나의 모습이 바로 탐진치입니다. 모든 생각과 느낌의 뿌리에서 탐진치가 번득번득 일어나는 것을 쉽게 알아차릴 때까지 계속합니다. 여기에서 자책을 하면 안 됩니다. 그냥 알아차리기만 합니다.
이제 밖으로 탐진치를 알아차립니다. 내가 아닌 남의 말과 행동에서 처음에는 탐진치를 위에서 하던 방식으로 하나하나, 그다음에는 탐진치를 묶어서 하나로 말이나 생각 없이 그냥 알아차립니다. 시작은 주위에 가까운 사람에서 시작합니다. 예를 들어, 자식, 배우자, 부모, 형제, 친척, 친구, 모르는 사람 순서로 합니다. 이때도 그냥 알아차리기만 합니다. 이래서 안으로 밖으로, 즉 나에게서 남에게서 쉴 틈 없이 탐진치가 번득번득 일어남을 자연스럽게 쉽게 알아차릴 때까지 계속합니다.
이제 반조할 때입니다. 나와 남에게서 끊임없이 탐진치가 번득번득하고 일어남을 보면서 나도 남도, 즉 모든 인간은 탐진치 덩어리고, 탐진치를 원료로, 생존하기 위해서 아등바등 살아가고 있고, 이 지옥 같은 탐진치라는 감옥에 갇혀 있음을 알게 됩니다.
또한 나는 매일 뭔가가 죽어서 만들어진 음식으로 생명을 유지합니다. 즉 매일 이 몸과 마음은 살생에 의지해서 존재합니다. 정말 징글징글하고 무서운 현실, 이것은 내가 원해서 일어난 것도 아니고, 선택도 없이 태어나서 보니 나라는 것은 탐진치 덩어리로 치열하게 생존 경쟁하다 늙고 병들어 죽는다는 것을 (수행 체험으로) 알게 됩니다. 그뿐만 아니라 내 자식, 배우자, 부모, 형제, 친구, 모르는 사람들까지 지구의 모든 인간이 선택 없이 이 탐진치 지옥에 태어났다는 것을 체험으로 알면 그때 나와 남에게 자애와 연민 그리고 너그러운 마음, 열린 마음, 이해심이 일어납니다. 이렇게 자연스럽게 이 수행으로 탐진치가 가라앉고 줄어들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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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탐진치가 여섯 가지 문(눈, 코, 귀, 혀, 몸, 마음)에서 일어는 것을 봐야 합니다. 눈으로 무엇을 보는 순간 탐진치가 번득, 번개처럼 일어납니다. 코로 무슨 냄새 맞는 순간 탐진치가 번득, 번개처럼 일어납니다. 소리, 맛, 감각, 마음에서도 마찬가지로 대상이 여섯 개 문에 부딪히는 순간에 탐진치가 번득, 번개처럼 일어납니다.
처음에는 천천히 여섯 개의 문에서 일어나는 탐진치를 알아차립니다. 계속하다 보면, 점점 빠르게 움직이는 마음과 거기에 연결된 탐진치를 알아차리게 됩니다. 눈에 뭔가 보일 때, 냄새를 맡을 때, 귀에 들릴 때, 맛을 느낄 때, 몸이 움직일 때, 생각, 느낌 등이 일어날 때, 마음은 여섯 개 문을 계속 빠르게 돌아다닙니다. 눈으로 보고, 금방 다음 순간 발로 옮겨가고 또 금방 소리로 기울이고, 이렇게 여섯 개 문에서 일어나는 마음이 찰나에 이 문에서 저 문으로 정신없이 빠르게 옮겨 다니는 것을 체험으로 알아야 합니다.
이 수행은 항상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매번 짧게 1분~2분, 길게는 5분 정도면 충분합니다. 그리고 이 수행은 고도의 집중이 필요하기에 위험할 수 있는 상황 (예로 운전 중, 뜨거운 것을 다룰 때, 칼이나 날카로운 것을 다룰 때, 기계 다룰 때, 평평하지 않은 길을 걸을 때, 차 다니는 길을 걸을 때, 계단을 오르내릴 때 등등)에서는 절대로 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마음과 탐진치가 여섯 개 문에서 찰나에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을 쉽게 알아차릴 때까지 계속합니다.
이 수행으로 마음이 무상-고-무아라는 것을 체험하게 됩니다. 왜 무상이냐는 해보면 말할 필요도 없이 알게 됩니다. 이 수행은 하면 할수록 마음이 얼마나 여섯 개 문에서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미친 것처럼 빠르게 돌아다니는지, 계속 변하는지, 즉 ‘무상’한지 알게 됩니다.
그리고 내 마음에서 일어나는 탐진치가 여섯 개 문에서 미친 듯이 번득번득하면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을 내가 정지시키지 못합니다. 못 알아차려서 정지시켰다고 착각할 수도 있지만 그것은 착각일 뿐입니다. 실제로 이 수행은 하면 할수록 마음 움직임의 속도는 인간이 알아차릴 수 없을 정도, 즉 컴퓨터처럼 빠르게 움직인다는 것을 체험으로 알게 됩니다.
여기서 반조가 일어납니다. 즉 내가 내 마음을 모르고 있었고, 내 마음을 제어, 지배하지 못하는 것을 체험합니다. 그래서 “무아”가 정착됩니다. 그리고 내가 제어 못하는 이 무시무시한 속도로 움직이는 마음, 계속 변하는 마음, 그 마음에서 번득이는 탐진치, 이 모든 것은 괴로움입니다, 즉 ‘고’입니다. 이렇게 낮은 단계이지만 무상-고-무아를 체험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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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나 자신이 왜 해탈과 열반의 길을 가야 하는지 분명하고 절박해집니다. 부처님은 팔정도가 그 길이라고 하셨습니다. 나는 팔정도를 닦아서 이 지옥에서 벗어날 것이라는 신념이 확실히 정착됩니다. 즉 왜 내가 팔정도를 닦아야 하는 이유와 목표가 확립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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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 견해가 위의 수행 체험으로 확립되면 그때 탐진치가 줄고 그 자리에 사무량심(자애, 연민, 더불어 기뻐함, 평온)이 자리 잡기 시작합니다. 저는 때로는 자애, 연민, 더불어 기뻐함을 간결하게 ‘사랑’으로 표현합니다. 물론 탐진치가 없는 상태에서 일어나는 ‘사랑’이지요. 그리고 이 수행으로 오장애 (감각적 욕망, 악의, 해태 & 혼침, 들뜸 & 후회, 의심)도 많이 줄어듭니다.
잠자는 시간 외에 항상 깨어있음으로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탐진치와 사무량심을 알아차려서 자연스럽게 탐진치가 줄고 사무량심이 증가하도록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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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차림으로 탐진치가 줄고 사무량심이 증가하면서 자연스럽게 바른말, 행동, 생계, 즉 계를 지키는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범부에게 해당되는 오계는 하루아침에 완벽하게 지켜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팔정도를 닦다 보면 언젠가 오계를 지키게 됩니다. 그러니 완벽하게 지키지 못한다고 자책하지도 말고 계를 무시하지도 말고 꾸준히 지키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리고 계를 어길 때는 어기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이 계를 지키는 데 도움이 됩니다. 계를 지켜야 마음이 편하고 흔들리지 않아서 수행도 잘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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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지나친 노력도 게으름도 아니고 적절하게 팔정도를 닦습니다. 부처님 말씀대로 “부처님은 폭류에 가만히 서 있지도 건너려고 애쓰지도 않고 건넜다”를 명심하시면 도움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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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차림, 꿰뚫어 알아차림을 나는 ‘항상 깨어 있음’이라고 표현합니다. 깨어 있어서 나의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알아차림, 꿰뚫어 알아차림은 팔정도의 8가지 요소 모두를 닦는데 기본이 됩니다. 이 수행은 처음부터 끝까지 해야 하는 것으로 특히 사마타와 위빳사나 수행의 기초가 되고 그 외에도 마음이 과거나 미래로 헤매지 않고 지금 여기에 머물게 해서 고통에서 벗어나는 데 도움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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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탐진치와 오장애의 상태를 반조할 때입니다. 위 단계들을 충분히 닦았으면 탐진치도 어느 정도 줄었고 오장애도 쉽게 가라앉을 것입니다. 하지만 오장애 중 ‘후회’는 반조로 좀 더 신경을 써서 닦아야 합니다. 과거에 일어난 일이 후회로 다가오면 조용히 앉아서 그 일을 제삼자의 관점에서 차분히 지켜봐야 합니다. 그렇게 반복해서 지켜보다 보면 언젠가 후회로 마음이 떨리고 감정이 복받치는 것이 가라앉고 차분하게 됩니다.
탐진치와 오장애가 어느 정도 가라앉으면 이제 사마타를 닦을 때가 왔습니다. 의자 든 바닥이 든 편안히 앉아서 의도적으로 숨을 몇 번 쉬면서 숨을 인중에서 알아차립니다. 그리고 숨이 느껴진다 싶으면 그때부터 그냥 자연스럽게 숨이 들고나는 것을 느낍니다. 계속 마음을 숨이 인중에 닫는 느낌에 집중시킵니다. 이때 편안한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긴장, 조바심, 욕심, 자책, 분노, 짜증 등이 일어나지 않도록 신경 써야 합니다. 그러면 다시 오장애에 걸립니다. 마음은 절대로 내가 시키는 대로 한군데 있지 않습니다.
마음은 위 수행으로 체험했듯이 미친 듯이 빠르게 이리저리 여섯 개 문에서 헤매는 것입니다. 원래가 그렇습니다. 그러니 그 미친 망나니 마음이 주인도 아닌 내 말에 복종할 리가 없습니다. 이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래서 참아야 합니다. 천천히, 무리하지 말고, 울고 보채는 어린아이 다루듯이 살살 집중으로 이끌어가야 합니다.
이제 위의 모든 수행을 충분히 잘 했으면 어렵지 않게 오장애가 잠시라도 가라앉고, 눌려지고, 마음이 집중되어 초선의 희열이 일어납니다. 희열은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게 나타날 수 있습니다. 대개 처음에는 몸이 흔들리기도 하고, 심장박동과 숨이 같은 리듬을 타면서 희열로 진전되기도 합니다. 희열의 느낌은 많은 경우에 일상 욕계에서 일어나는 성적 쾌락과 비슷합니다.
희열이 충분히 일어나게 놔두면 저절로 행복으로 넘어갑니다. 계속 숨에 집중하면서 행복을 느끼면 생각이 끊어지고 수승한 희열과 행복이 일어납니다. 이때 생각을 줄이거나 끊으려고 애쓰면 오히려 장애가 됩니다. 계속 앉아있는 시간을 늘리고 차분히 기다리면 언젠가 생각이 끊어집니다.
초선의 희열과 행복은 이선에서 일어나는 희열과 행복보다 거칩니다. 이선의 수승한 희열과 행복과 집중으로 삼선으로 넘어가면 마음은 평온해지고 몸으로 행복을 만끽합니다. 한참 있다 보면 몸의 행복이 가라앉고 평온과 집중만 남아 있는 사선에 이릅니다.
사선에서 고요히 숨을 지켜보고 있으면 숨이 미세해지고 나아가서 한참 씩 멈추는 상태가 일어납니다. 여기서 인위적으로 숨을 멈추면 몸에 무리가 오고 집중이 깨집니다.
이때부터 매 단계, 초선에서 사선까지 계속 연습해서 들고나고 머물기를 자유자재로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초선에서 사선까지 1시간 30분에서 3시간 정도 유지할 수 있을 때까지 계속 닦습니다. 때로는 초선에서 사선까지 올라갔다 다시 사선에서 초선으로 내려오는 연습도 합니다.
그리고 초선하고 초선 요소를 통찰하고 이선하고 이선 요소를 통찰하고, 이런 방법으로 모든 선정 요소 또한 무상-고-무아라는 지혜를 체험으로 알아야 합니다. 이 통찰로 무상-고-무아라는 지혜도 일어나지만 더불어 열 가지 족쇄에 중에서 여섯 번째 족쇄인 색계 선정에 대한 탐욕이 일어남을 막을 수 있습니다.
삼매는 매일 치아를 닦듯이 꾸준히 해야 유지되고 진전됩니다. 삼매는 수행이 끊어지면 퇴보되고 결국 사라집니다. 이것은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단계에 이르면 잠자는 시간 빼고는 항상 깨어 있고 (알아차리고, 꿰뚫어 알아차리고) 매일 30분에서 1시간, 가능하면 1시간 30분 선정 수행을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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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가 팔정도 수행의 기본 단계입니다. 이것은 더 높은 단계 수행 (무색계 사처, 칠각지, 위빳사나, 상수멸, 신통)의 기초가 됩니다. 높은 단계의 수행은 가능하면 수행 지도를 하는 불환자와 아라한에게 배우는 것을 권합니다. 물론 그런 불환자 또는 아라한을 만나기는 어렵지만 그들은 탐진치가 없고 사무량심이 가득해서 수행 지도자로서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NBEF 원인-조건-현상-반응 관찰 수행
연기를 일상에서 직접 관찰하는 수행
NBEF의 원인-조건-현상-반응 관찰 수행은 연기를 하나의 이론으로 이해하는 데 그치지 않고, 몸과 마음에서 실시간으로 일어나는 과정으로 직접 관찰하여 체험적 지혜를 계발하도록 구성된 실천적 수행법입니다.
이 글에서는 이 수행이 연기의 원리를 일상에 어떻게 적용하는지 설명하겠습니다. 특히 일어난 현상 속에서 ‘나’나 ‘누군가’를 세우지 않고, 그 현상이 일어난 원인과 조건, 그리고 그에 대한 마음의 반응을 관찰하는 방법을 살펴보겠습니다.
1) 원인과 조건에 따라 일어나는 현상
세상에 형성된 모든 것은 원인과 조건에 의존하여 일어납니다. 어느 것도 홀로 생겨나거나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씨앗을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씨앗은 식물이 자라나는 직접적인 원인이지만 씨앗만으로는 식물이 자랄 수 없습니다. 흙, 물, 햇빛, 온도와 시간 등의 조건이 함께 갖추어져야 합니다. 씨앗과 여러 조건이 결합할 때 싹이 트고 식물이 자라나는 현상이 나타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느낌, 생각, 감정, 욕구와 행동도 하나의 독립된 원인으로 발생하지 않습니다. 여러 원인과 조건이 함께 작용하여 하나의 현상이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원인과 조건’은 서로 완전히 분리된 두 가지라기보다, 현상을 일으키는 하나의 인과적 조건 체계, 즉 ‘인과 조건’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에서 무명과 갈애는 괴로움과 윤회를 지속시키는 근본적인 인과 조건입니다. 그러나 무명과 갈애도 절대적인 최초 원인은 아닙니다. 그것들 또한 앞선 원인과 조건에 의해 일어나고 유지됩니다.
연기에는 독립된 최초 원인이 없으며, 윤회의 시작점도 발견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끝없는 인과의 순환을 ‘윤회의 바퀴’라고 표현합니다. 바퀴의 둘레에서는 최초의 시작점을 찾을 수 없듯이 윤회에서도 최초의 시작점을 찾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윤회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무명과 갈애라는 조건이 소멸하면 윤회를 움직이던 힘이 사라지고, 그 사람에게 윤회는 끝납니다.
AN 10.61은 이 점을 더욱 분명히 설명합니다. 부처님께서는 무명의 최초 시작점은 알 수 없지만, 무명을 자라게 하는 조건은 알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무명의 직접적인 자양분은 다섯 가지 장애이며, 그 조건을 거슬러 올라가면 몸과 말과 마음으로 짓는 나쁜 행위, 감각기능을 단속하지 못함, 마음챙김과 알아차림의 부족, 지혜 없이 마음에 잡도리함, 믿음 없음, 정법을 배우지 않음, 참된 사람을 섬기지 않음으로 이어집니다. 따라서 무명 역시 독립된 최초 원인이 아니라, 앞선 조건들에 의해 계속 자라고 유지되는 현상입니다. (AN 10.61 「무명경」)
2) 오온과 육문에서 일어나는 경험
NBEF 수행에서는 오온, 즉 몸과 마음을 모든 경험이 일어나는 토대로 봅니다. 이 몸과 마음을 바탕으로 눈, 귀, 코, 혀, 몸, 마음이라는 여섯 감각 기능이 각각의 대상과 만납니다.
눈이 형상을 만나면 눈의 알음알이가 일어나고, 귀가 소리를 만나면 귀의 알음알이가 일어납니다. 감각 기능과 대상과 알음알이, 이 세 가지가 만나는 것이 촉입니다. 촉을 조건으로 느낌이 일어나며, 그 느낌을 조건으로 갈애와 취착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이 과정은 매우 빠르게 진행되기 때문에 마음챙김이 없으면 우리는 조건에 따라 일어난 느낌, 생각과 감정을 곧바로 ‘나’ 또는 ‘나의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내가 화가 났다.”
“그 사람이 나를 화나게 했다.”
“왜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났는가?”
“나는 이것을 반드시 가져야 한다.”
그러나 자세히 관찰하면 ‘나’라는 독립된 주체가 먼저 존재하여 모든 것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닙니다. 감각 기능과 대상이 만나고, 알음알이와 촉과 느낌이 일어나며, 과거의 기억, 성향, 습관, 견해와 욕구가 조건으로 작용하여 마음의 반응이 일어납니다.
3) “누가 했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조건으로 일어났는가?”
SN 12.12에서 몰리야팍구나 존자는 “누가 접촉합니까?”, “누가 느낍니까?”, “누가 갈애합니까?”, “누가 취착합니까?”라고 묻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이러한 질문 방식이 적절하지 않다고 말씀하십니다.
‘누가’라고 묻는 순간, 우리는 현상의 배후에 그것을 행하거나 경험하는 고정된 주체가 있다고 전제하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는 그 대신 여섯 감각장소를 조건으로 촉이 일어나고, 촉을 조건으로 느낌이 일어나며, 느낌을 조건으로 갈애가, 갈애를 조건으로 취착이 일어난다고 보아야 한다고 가르치셨습니다.
따라서 수행자는 어떤 현상이 일어났을 때 다음과 같이 관찰합니다.
“무엇을 원인과 조건으로 이 현상이 일어났는가?”
“이 현상과 함께 어떤 느낌이 일어났는가?”
“마음은 그 느낌에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가?”
“이 반응은 다음에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가?”
“누가 했는가?”라는 질문은 사람과 자아를 중심에 세우지만, “무엇을 조건으로 일어났는가?”라는 질문은 연기의 과정을 보게 합니다.
4) 원인-조건-현상-반응
NBEF 수행에서는 일어나는 과정을 네 가지 측면에서 관찰합니다.
원인은 현상이 일어나게 한 직접적이거나 근본적인 요인입니다.
조건은 그 현상이 일어날 수 있도록 돕고 뒷받침한 여러 요인입니다.
현상은 원인과 조건에 따라 몸과 마음에 실제로 나타난 느낌, 생각, 감정, 욕구, 말과 행동입니다.
반응은 일어난 현상에 대하여 마음이 취하는 태도와 그에 따라 이어지는 말과 행동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반응으로 과정이 끝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현재의 반응은 다시 다음 현상을 일으키는 조건이 됩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의 말을 듣고 불쾌한 느낌이 일어났다고 해 보겠습니다. 마음챙김이 없으면 그 느낌을 ‘나의 모욕’으로 취하고 성냄으로 반응할 수 있습니다. 성냄에서 나온 말과 행동은 상대방의 성냄을 일으키는 조건이 되고, 상대방의 반응은 다시 나의 괴로움과 분노를 키우는 조건이 됩니다.
이와 같이 하나의 현상은 반응을 낳고, 그 반응은 다음 현상의 조건이 됩니다.
원인과 조건 → 현상 → 반응 → 새로운 조건 → 다음 현상
이 흐름은 고정된 직선이 아니라 끊임없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과정입니다. 하나의 현상은 다음 현상의 조건이 되고, 그 현상에 대한 반응은 또 다른 현상을 일으킵니다. 이렇게 인과의 흐름이 계속 이어집니다.
이것이 우리가 일상에서 직접 경험할 수 있는 연기이며, 윤회가 작동하는 방식입니다. 윤회는 죽은 뒤에만 일어나는 일이 아닙니다. 탐욕, 성냄, 어리석음에 따라 괴로움이 반복해서 생겨나는 바로 이 순간의 몸과 마음에서도 윤회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5) 현상과 반응을 분리하여 보는 수행
수행자는 일어난 현상과 그에 대한 반응을 구분하여 관찰해야 합니다.
불쾌한 말이 들린 것은 하나의 현상입니다. 그 말을 듣고 불쾌한 느낌이 일어난 것도 조건에 따른 현상입니다. 그러나 그 느낌을 붙잡고 화를 내거나, 상대방을 미워하거나, 공격적인 말을 하는 것은 마음의 반응입니다.
현상은 이미 일어났지만, 그 현상에 반드시 탐욕이나 성냄으로 반응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마음챙김과 지혜가 개입할 수 있는 지점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수행자는 다음과 같이 알아차립니다.
“이러한 원인과 조건으로 이러한 현상이 일어났구나.”
“이 현상과 함께 불쾌한 느낌이 일어났구나.”
“지금 마음에서 성냄이 일어나려고 하는구나.”
“이 성냄을 따라가면 또 다른 괴로움의 조건이 되겠구나.”
이렇게 관찰하면 느낌과 갈애 사이에 마음챙김과 지혜가 작용할 공간이 생깁니다.
6) 느낌에서 갈애로 이어지는 흐름
12연기에서 촉을 조건으로 느낌이 일어나고, 느낌을 조건으로 갈애가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느낌을 어떻게 알아차리는지가 매우 중요합니다.
즐거운 느낌이 일어나면 마음은 흔히 그것을 더 얻거나 계속 유지하려는 탐욕으로 기울어집니다. 괴로운 느낌이 일어나면 그것을 밀어내거나 없애려는 성냄으로 기울어집니다.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느낌에 대해서는 무관심과 무지가 작용하여 그 느낌의 발생과 소멸을 알아차리지 못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즐거운 느낌 자체가 탐욕은 아니며, 괴로운 느낌 자체가 성냄도 아닙니다. 느낌은 원인과 조건에 따라 일어난 현상입니다. 문제는 그 느낌을 ‘나’ 또는 ‘나의 것’으로 붙잡고 갈애와 취착으로 반응하는 데 있습니다.
느낌을 탐욕, 성냄, 어리석음에 끌려가지 않고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면, 그 접촉에서 느낌이 갈애와 취착으로 발전하는 흐름은 더 이상 강화되지 않습니다.
한 번의 알아차림으로 모든 갈애와 윤회가 영구히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느낌에서 갈애로 이어지는 흐름을 반복해서 알아차리고 놓아 버리면 탐진치의 힘은 점차 약해집니다. 이러한 수행이 깊어져 무명과 갈애가 완전히 소멸할 때, 괴로움과 윤회의 조건도 함께 소멸합니다.
7) 탐진치와 사무량심
마음챙김과 지혜가 없으면 마음은 일어난 현상을 ‘나’ 또는 ‘나의 것’으로 취하고 탐욕, 성냄, 어리석음에 따라 반응합니다. 그 반응은 다시 불선한 말과 행동, 관계의 갈등과 새로운 괴로움의 조건이 됩니다.
반면 마음챙김과 지혜가 있으면 현상이 원인과 조건에 의존하여 일어났음을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그러면 탐진치의 습관적인 반응을 따르지 않고 자애, 연민, 더불어 기뻐함과 평온으로 반응할 가능성이 열립니다.
성냄의 조건을 계속 공급하면 성냄이 자라고, 자애의 조건을 기르면 자애가 자랍니다. 질투의 조건을 공급하면 질투가 자라고, 더불어 기뻐함을 계발하면 질투는 약해집니다. 집착의 조건을 공급하면 괴로움이 자라고, 평온과 지혜를 계발하면 집착은 약해집니다.
수행자는 이를 교리로만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몸, 느낌과 마음에서 직접 확인합니다.
이 과정에서 마음의 반응도 원인과 조건에 따라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임을 보게 됩니다. 탐진치는 고정된 ‘나의 성격’이나 ‘나의 본성’이 아닙니다. 특정한 조건이 갖추어졌을 때 일어나는 현상이며, 그 조건이 약해지거나 사라지면 탐진치도 약해지거나 사라집니다.
마찬가지로 자애, 연민, 더불어 기뻐함과 평온도 원인과 조건에 따라 계발될 수 있습니다. 수행자는 불선한 마음을 일으키는 조건은 줄이고, 선한 마음을 일으키는 조건은 기르는 법을 배웁니다.
8) 무상·괴로움·무아의 체험
모든 현상은 원인과 조건에 따라 일어나며, 그 조건이 변하면 현상도 변하거나 사라집니다. 모든 형성된 현상은 다른 현상과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받으며 변하기 때문에 영원하고 독립적인 실체로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조건 지어진 것은 무상합니다. 무상한 것을 영원히 유지하거나 뜻대로 지배할 수 없으므로 괴로움의 원인이 됩니다. 또한 원인과 조건에 의존하여 일어나고 사라지므로 그 안에서 독립되고 불변하는 자아를 찾을 수 없습니다.
이 사실을 알지 못하는 것이 무명입니다.
수행자는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주의 깊게 관찰해야 합니다. 몸의 감각, 느낌, 생각, 감정과 욕구가 어떠한 조건에서 일어나고, 조건이 변함에 따라 어떻게 달라지고 사라지는지를 살펴봅니다.
그 변화를 단순한 개인적 경험이나 사건으로만 보지 않고, 원인과 조건에 따라 일어나고 사라지는 무상의 과정으로 관찰합니다. 그리고 그 현상을 ‘나’ 또는 ‘나의 것’으로 붙잡을 때 괴로움이 어떻게 일어나는지도 함께 관찰합니다.
이러한 관찰이 반복되면 무상·괴로움·무아는 더 이상 머리로 이해하는 개념에 머물지 않고 몸과 마음에서 직접 확인되는 사실이 됩니다.
수행자는 모든 현상이 조건에 따라 일어났다가 사라지고, 그 현상에 대한 반응조차 조건에 따라 변한다는 사실을 보게 됩니다. 이를 통해 고정된 ‘나’가 경험을 소유하고 통제한다는 견해가 점차 약해집니다.
9) 업과 윤회를 현재의 경험으로 이해하기
원인과 조건에 따라 현상이 일어나고, 그 현상에 대한 반응이 다시 다음 현상의 조건이 되는 과정은 업의 작용을 현재의 경험에서 이해하게 합니다.
일어난 현상에 탐욕, 성냄, 어리석음으로 반응하면 그 반응은 불선한 업이 되고, 새로운 괴로움을 일으키는 조건이 됩니다. 반대로 자애, 연민, 더불어 기뻐함, 평온과 지혜로 반응하면 그 반응은 선한 업이 되어 다른 결과를 일으키는 조건이 됩니다.
따라서 업은 외부의 힘이 내리는 상이나 벌이 아닙니다. 의도에 따른 반응이 다음 몸과 마음의 상태, 말과 행동, 관계와 경험을 형성하는 인과의 과정입니다.
수행자는 이 과정을 반복해서 관찰하면서 윤회를 하나의 철학적 개념이 아니라 살아 있는 경험으로 이해하게 됩니다. 탐진치에 따른 반응이 계속되는 동안 같은 괴로움이 다른 형태로 반복됩니다. 원인과 조건은 조금씩 달라지지만 탐진치에서 반응하는 구조는 계속 이어집니다.
반면 마음챙김과 지혜로 그 흐름을 알아차리면 탐진치에 따른 반응이 약해지고, 이전과 같은 괴로움이 반복되는 과정도 점차 약해집니다. 수행자는 윤회의 바퀴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뿐만 아니라, 그 바퀴가 어떻게 멈추는지도 자신의 경험에서 보기 시작합니다.
10) 결과를 바꾸려면 조건을 바꾸어야 한다
원인과 조건에 대한 관찰이 쌓이면 수행자는 결과만을 붙잡고 바꾸려고 하는 것이 충분하지 않음을 깨닫게 됩니다. 결과를 바꾸려면 그 결과를 일으키고 유지하는 조건을 바꾸어야 합니다.
성냄을 없애려고 억누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어떤 접촉과 느낌, 기억, 견해, 욕구와 집착이 성냄의 조건이 되었는지를 보아야 합니다.
괴로움을 피하려고만 하는 것도 충분하지 않습니다. 어떤 무명, 갈애와 취착이 그 괴로움을 반복해서 일으키는지를 관찰해야 합니다.
동시에 선한 현상을 일으키는 조건도 의도적으로 계발해야 합니다. 오계, 바른 견해, 바른 의도, 바른말, 바른 행위, 바른 생계, 바른 노력, 바른 마음챙김과 바른 삼매는 탐진치가 약해지고 지혜와 평온이 자라게 하는 조건입니다.
결과를 바꾸려면 원인과 조건을 바꾸어야 합니다. 이것이 연기를 실제 삶에 적용하는 핵심입니다.
이 원리를 이해하면 수행자는 괴로운 결과가 일어난 뒤에 후회하거나 자책하는 데 머물지 않습니다. 그 결과를 일으킨 원인과 조건을 찾아보고, 같은 결과가 반복되지 않도록 조건을 바꾸어 갑니다.
11) 윤리를 부정하지 않는 무아의 관찰
“누가 했는가?”라고 묻지 않고 원인과 조건을 관찰한다는 것은 행위에 대한 윤리적 책임을 부정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행위에는 결과가 따릅니다. 의도적인 말과 행동은 자신과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주고, 다음 현상이 일어나는 조건이 됩니다. 그러므로 수행자는 자신의 반응을 더욱 세심하게 살펴보고 그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합니다.
무아는 “아무도 없으므로 무엇을 해도 상관없다”는 주장이 아닙니다. 무아에 대한 이해는 탐진치에 따른 반응을 ‘나’ 또는 ‘나의 본성’으로 정당화하지 않고, 그 반응을 일으키는 조건을 발견하여 바꾸도록 합니다.
연기를 바르게 이해할수록 자신의 말과 행동이 다음 순간과 다른 사람의 삶에 어떤 조건이 되는지를 더욱 분명하게 알게 됩니다. 따라서 무아에 대한 통찰은 윤리적 책임을 약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깊게 합니다.
“그 사람이 나를 화나게 했다”는 생각에 머물면 자신의 반응을 다른 사람의 책임으로 돌리기 쉽습니다. 그러나 어떤 조건에서 성냄이 일어났고, 그 성냄에 어떻게 반응했는지를 관찰하면 자신의 마음과 행동에 대한 책임을 분명하게 볼 수 있습니다.
12) 팔정도와 오계라는 토대
이와 같은 연기 관찰은 단순한 지적 분석만으로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마음이 탐진치에 계속 휩쓸리고 말과 행동이 정화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현상을 있는 그대로 보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오계가 확고하게 확립되어야 하며, 팔정도 전체가 수행의 토대가 되어야 합니다. 특히 바른 견해, 바른 의도, 바른말, 바른 행위와 바른 생계는 수행자의 삶과 마음을 안정시키고, 바른 노력, 바른 마음챙김과 바른 삼매는 원인과 조건에 따라 일어나는 미세한 현상을 직접 관찰할 수 있게 합니다.
무명은 단순히 지식이 부족한 상태가 아니라 사성제와 연기를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하는 상태입니다. 무명을 바로잡는 것은 바른 견해를 세우는 일이며, 바른 견해는 팔정도의 나머지 요소들이 올바른 방향으로 작동하도록 이끕니다.
NBEF 수행에서는 탐욕, 성냄, 어리석음이 느낌, 마음과 몸의 감각에서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실시간으로 관찰합니다. 이를 억누르거나 회피하지 않고, 발생 조건과 변화와 소멸을 알아차립니다. 이러한 직접적인 관찰을 통해 괴로움의 원인과 소멸의 가능성을 이해하고 바른 견해를 확립해 나갑니다.
오계와 팔정도는 이 수행과 별도로 존재하는 규칙이 아닙니다. 불선한 원인과 조건을 줄이고 선한 원인과 조건을 계발함으로써 마음챙김, 삼매와 지혜가 자라도록 하는 수행의 토대입니다.
13) 연기를 보는 것이 법을 보는 것
부처님께서는 “연기를 보는 자는 법을 보고, 법을 보는 자는 연기를 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MN 28에 전해집니다.
또한 SN 22.87에서는 “법을 보는 자는 나를 보고, 나를 보는 자는 법을 본다”고 말씀하십니다.
두 말씀을 함께 살펴보면 부처님을 본다는 것은 그분의 육체적 형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법, 특히 원인과 조건에 따른 괴로움의 발생과 소멸을 직접 보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NBEF의 원인-조건-현상-반응 관찰 수행은 초기경전의 연기를 대신하는 새로운 교리가 아닙니다. 부처님께서 설하신 괴로움의 발생과 소멸 원리를 일상에서 직접 관찰하고 체득할 수 있도록 정리한 NBEF의 독창적이고 실천적인 수행법입니다.
이 수행의 목적은 원인, 조건, 현상과 반응을 관념적으로 분류하거나 분석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현상의 발생과 소멸, 그리고 마음의 반응을 반복하여 직접 관찰함으로써 다음과 같은 사실을 체득하는 데 있습니다.
모든 현상은 원인과 조건에 따라 일어납니다.
일어난 현상은 조건이 변하면 변하거나 사라집니다.
일어난 현상에 대한 반응은 다시 다음 현상의 조건이 됩니다.
탐진치에 따른 반응은 괴로움과 윤회를 지속시킵니다.
마음챙김과 지혜에 따른 반응은 탐진치를 약화시키고 자애, 연민, 더불어 기뻐함과 평온을 계발합니다.
느낌에서 갈애와 취착으로 이어지는 흐름을 알아차리고 놓아 버리면 괴로움의 인과 조건이 점차 약해집니다.
모든 현상에는 고정되고 독립적인 ‘나’가 없지만, 의도적인 반응은 반드시 다음 결과의 조건이 됩니다.
이러한 사실을 자신의 몸과 마음에서 직접 보고 이해할 때, 수행자는 윤회를 하나의 추상적인 교리가 아니라 현재의 삶에서 작동하는 과정으로 경험하게 됩니다. 그리고 괴로움이 어떠한 조건에서 일어나며, 그 조건이 사라질 때 괴로움도 어떻게 소멸하는지를 실제로 알게 됩니다.
윤회의 최초 시작점은 발견할 수 없지만, 윤회를 지속시키는 조건은 지금 이 순간에도 관찰할 수 있습니다. 또한 그 조건을 소멸시킴으로써 윤회의 바퀴를 멈출 수 있습니다.
이것이 NBEF 원인-조건-현상-반응 관찰 수행이 지향하는 체험적 지혜입니다.
참고 경전: 인연 상윳따(SN 12), 특히 SN 12.12; MN 28; SN 22.87
Band (밴드): NBEF
낸시 어코드는 2017년 8월 31일에 Band 앱 내에 NBEF 그룹을 개설하였습니다. 개설 이후 현재까지 미국, 한국, 일본, 유럽의 수행자들이 이 온라인 공동체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NBEF Band는 사성제와 팔정도를 실제 삶 속에서 수행하고자 하는 담마 수행자들을 위한 소통 공간입니다.
Band 앱에서는 담마 법문, 명상 수행 경험, 수행에 대한 질문과 답, 그리고 구성원들의 소식과 행사 등을 함께 나눕니다. 이 공간은 NBEF 수행을 하는 수행자들이 서로 연결되고 소통할 수 있도록 마련된 공동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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