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N 11 · 께왓다 경
께왓다의 요청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날란다의 빠와리까 망고 숲에 머물고 계셨다. 그때 께왓다 장자가 세존께 다가가 절을 올리고 한쪽에 앉았다. 한쪽에 앉은 그는 세존께 말했다. “세존이시여, 이 날란다는 강성하고 부유하며 인구가 많고 세존을 믿는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세존께서 비구 한 분에게 인간을 넘어선 경지에서 나온 신통의 기적을 보이도록 명하시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날란다 사람들이 세존을 더욱 믿게 될 것입니다.”
세존께서 께왓다 장자에게 말씀하셨다. “께왓다여, 나는 비구들에게 ‘오라, 비구들이여, 흰옷 입은 재가자들에게 신통의 기적을 보여라’라고 가르치지 않는다.”
두 번째로도 … 세 번째로도 께왓다 장자는 세존께 말했다. “저는 세존과 다투려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말씀드립니다. 세존이시여, 이 날란다는 강성하고 부유하며 인구가 많고 세존을 믿는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세존께서 비구 한 분에게 인간을 넘어선 경지에서 나온 신통의 기적을 보이도록 명하시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날란다 사람들이 세존을 더욱 믿게 될 것입니다.”
세 번째로도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께왓다여, 나는 비구들에게 ‘오라, 비구들이여, 흰옷 입은 재가자들에게 신통의 기적을 보여라’라고 가르치지 않는다. 께왓다여, 내가 스스로 직접 알고 실현한 뒤 밝힌 기적은 이 세 가지이다. 무엇이 셋인가? 신통의 기적, 남의 마음을 알아 드러내는 기적, 가르침의 기적이다.” [주 1]
신통의 기적
“신통의 기적은 무엇인가? 여기 비구가 여러 가지 신통을 행한다. 하나였다가 여럿이 되고 여럿이었다가 하나가 된다. 나타나고 사라진다. 벽과 성벽과 산을 허공처럼 막힘없이 통과한다. 땅을 물처럼 들어가고 나온다. 물에 빠지지 않고 땅처럼 걷는다. 가부좌를 틀고 날개 달린 새처럼 공중을 난다. 그토록 위력 있고 강력한 해와 달까지 손으로 만지고 쓰다듬는다. 몸으로 범천의 세계에 이르기까지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를 믿고 확신하는 사람이 그가 여러 가지 신통을 행하는 것을 … 범천의 세계에 이르기까지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보고, 믿음도 확신도 없는 사람에게 전한다. ‘참으로 놀랍고 경이롭습니다! 저 사문의 능력과 위력은 얼마나 큰지요. 방금 저는 그가 여러 가지 신통을 행하는 것을 … 범천의 세계에 이르기까지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면 믿음도 확신도 없는 사람은 믿음과 확신이 있는 사람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선생이여, 간다리라는 주문이 있습니다. 그 비구는 그 주문으로 여러 가지 신통을 행한 것입니다. … 범천의 세계에 이르기까지 영향력을 행사한 것입니다.’ 께왓다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믿음도 확신도 없는 사람이 믿음과 확신이 있는 사람에게 그렇게 말하지 않겠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렇게 말할 것입니다.”
“께왓다여, 나는 신통의 기적에서 이러한 허물을 보기 때문에, 신통의 기적을 부끄러워하고 꺼리며 싫어한다.”
남의 마음을 알아 드러내는 기적
“남의 마음을 알아 드러내는 기적은 무엇인가? 여기 비구가 다른 중생과 다른 사람들의 마음, 마음에서 일어나는 일, 생각과 숙고를 읽고 ‘당신의 생각은 이러하고, 당신의 생각이 향하는 곳은 여기이며, 당신의 마음은 이러하다’고 말한다.
그를 믿고 확신하는 사람이 그가 다른 중생들의 마음을 … 읽는 것을 보고, 믿음도 확신도 없는 사람에게 전한다. ‘참으로 놀랍고 경이롭습니다! 저 사문의 능력과 위력은 얼마나 큰지요. 방금 저는 그가 다른 중생들의 마음을 … 읽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면 믿음도 확신도 없는 사람은 믿음과 확신이 있는 사람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선생이여, 마니까라는 주문이 있습니다. 그 비구는 그 주문으로 다른 중생들의 마음을 … 읽은 것입니다.’ 께왓다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믿음도 확신도 없는 사람이 믿음과 확신이 있는 사람에게 그렇게 말하지 않겠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렇게 말할 것입니다.”
“께왓다여, 나는 남의 마음을 알아 드러내는 기적에서 이러한 허물을 보기 때문에, 그 기적을 두려워하고 부끄러워하며 싫어한다.”
가르침의 기적
“가르침의 기적은 무엇인가? 여기 비구가 이와 같이 가르친다. ‘이렇게 생각하고 저렇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이렇게 마음에 두고 저렇게 마음에 두지 마십시오. 이것을 버리고 저것에 들어 머무십시오.’ 께왓다여, 이것을 가르침의 기적이라고 한다.
다시 이 세상에 여래, 아라한이며 바르게 스스로 깨달은 이가 출현한다. 그는 처음도 훌륭하고 중간도 훌륭하고 끝도 훌륭한 법을 가르친다. 뜻과 표현을 갖추어, 온전히 완전하고 지극히 청정한 삶을 밝힌다.
재가자나 재가자의 아들이 그 법을 듣고 여래에 대한 확신을 얻어 생각한다. ‘재가생활은 답답하고 먼지 낀 길과 같다. 출가생활은 탁 트인 허공과 같다. 집에 살면서 잘 닦인 조개껍데기처럼 온전히 완전하고 청정한 삶을 실천하기는 쉽지 않다. 머리와 수염을 깎고 황갈색 가사를 입고, 집에서 집 없는 삶으로 출가하면 어떨까?’ 얼마 뒤 그는 재산이 많든 적든 버리고, 친족의 범위가 크든 작든 떠나, 머리와 수염을 깎고 황갈색 가사를 입고 집에서 집 없는 삶으로 출가한다.
출가한 뒤에는 계율의 규정으로 단속하며 아주 작은 잘못에서도 위험을 본다. 계행을 갖추고 감각의 문을 지키며 마음챙김과 알아차림을 갖추고 만족한다. … [자세한 설명은 DN 2 참조]”
오장애를 버림
“이러한 성스러운 계의 무더기, 감각기능의 단속, 마음챙김과 알아차림, 만족을 갖추어, 그는 한적한 거처를 찾습니다. 숲, 나무 아래, 산, 골짜기, 산비탈의 동굴, 묘지, 숲속 공터, 노천, 짚더미 같은 곳입니다. 탁발에서 돌아와 식사를 마친 뒤, 가부좌를 틀고 몸을 곧게 세우며 마음챙김을 앞에 확립하여 앉습니다.
세상에 대한 탐욕을 버려 탐욕 없는 마음으로 머물며, 마음을 탐욕으로부터 청정하게 합니다. 악의와 분노를 버려 악의 없는 마음으로 머물며, 모든 생명의 이익을 염려하고 마음을 악의와 분노로부터 청정하게 합니다. 해태와 혼침을 버려 해태와 혼침 없는 마음으로 머물며, 빛을 인식하고 마음챙기고 알아차리면서 마음을 해태와 혼침으로부터 청정하게 합니다. 들뜸과 근심을 버려 동요하지 않고 안으로 고요한 마음으로 머물며, 마음을 들뜸과 근심으로부터 청정하게 합니다. 의심을 버려 의심을 넘어 머물며, 선한 법들에 대해 혼란 없이 마음을 의심으로부터 청정하게 합니다.
어떤 사람이 빚을 내어 사업에 투자했다고 합시다. 사업이 성공하여 옛 빚을 갚고 아내를 부양할 돈까지 남습니다. 그는 ‘전에는 빚을 내어 사업에 투자했지만, 이제 사업이 성공하여 옛 빚을 갚고 아내를 부양할 돈까지 남았다’고 생각합니다. 그 때문에 기쁨과 즐거움을 경험합니다.
어떤 사람이 병들어 고통스럽고 중병을 앓는다고 합시다. 음식도 맛없고 몸에 힘도 없습니다. 시간이 흘러 병에서 회복하면 음식도 맛있고 몸에 힘도 생깁니다. 그는 ‘전에는 병들었지만 이제 회복하여 음식도 맛있고 몸에 힘도 생겼다’고 생각합니다. 그 때문에 기쁨과 즐거움을 경험합니다.
어떤 사람이 감옥에 갇혀 있다고 합시다. 시간이 흘러 재산도 잃지 않고 무사히 풀려납니다. 그는 ‘전에는 감옥에 갇혀 있었지만 이제 재산도 잃지 않고 무사히 풀려났다’고 생각합니다. 그 때문에 기쁨과 즐거움을 경험합니다.
어떤 사람이 남에게 매여 자기 뜻대로 살지 못하고 원하는 곳에도 갈 수 없는 종이라고 합시다. 시간이 흘러 종의 신분에서 풀려나면, 남에게 매이지 않고 자기 뜻대로 살며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있습니다. 그는 ‘전에는 종이었지만 이제 자유로워져 자기 뜻대로 살며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때문에 기쁨과 즐거움을 경험합니다.
어떤 사람이 돈과 물건을 가지고 황량하고 위험한 길을 여행한다고 합시다. 시간이 흘러 재산도 잃지 않고 무사히 그 길을 벗어납니다. 그는 ‘전에는 돈과 물건을 가지고 황량한 길을 여행했지만 이제 재산도 잃지 않고 무사히 벗어났다’고 생각합니다. 그 때문에 기쁨과 즐거움을 경험합니다.
이와 같이 비구는 자신 안에서 이 다섯 장애가 버려지지 않았을 때 그것을 빚, 질병, 감옥, 종살이, 황량한 길처럼 여깁니다. 그러나 자신 안에서 이 다섯 장애가 버려졌을 때에는 빚 없음, 건강, 감옥에서 풀려남, 자유, 안전한 곳처럼 여깁니다. 자신 안에서 그것들이 버려졌음을 볼 때 환희가 생깁니다. 환희로운 이에게 희열이 생깁니다. 희열에 찬 이의 몸은 고요해집니다. 몸이 고요해지면 즐거움을 경험합니다. 즐거움을 느끼는 이의 마음은 삼매에 듭니다.”
초선
“감각적 욕망에서 멀리 여의고 불선한 법들에서 멀리 여의어, 그는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인 고찰을 동반하고 멀리 여읨에서 생긴 희열과 즐거움이 있는 초선에 들어 머뭅니다. 멀리 여읨에서 생긴 희열과 즐거움으로 이 몸을 스며들게 하고 가득 채우고 흠뻑 적십니다.
능숙한 목욕사나 그의 견습생이 놋대야에 목욕 가루를 붓고 물을 거듭 뿌리며 반죽한다고 합시다. 그 목욕 가루 반죽은 안팎으로 물기가 스며들고 가득 차 있지만 물이 뚝뚝 흐르지는 않습니다. 이와 같이 비구는 멀리 여읨에서 생긴 희열과 즐거움으로 이 몸을 스며들게 하고 가득 채우고 흠뻑 적십니다. 온몸 어디에도 그 희열과 즐거움이 스며들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이것 역시 가르침의 기적이라고 한다.”
제2선
“다시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인 고찰이 가라앉음으로써, 그는 내적인 확신과 마음의 통일이 있으며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인 고찰이 없고 삼매에서 생긴 희열과 즐거움이 있는 제2선에 들어 머뭅니다. 삼매에서 생긴 희열과 즐거움으로 이 몸을 스며들게 하고 가득 채우고 흠뻑 적십니다.
안에서 샘물이 솟는 호수가 있다고 합시다. 동서남북 어느 쪽에서도 물이 흘러들지 않으며, 하늘에서는 때때로 충분한 비가 내립니다. 호수 안에서 솟는 시원한 샘물이 호수 전체에 스며들고 가득 차서, 시원한 물이 스며들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이와 같이 비구는 삼매에서 생긴 희열과 즐거움으로 이 몸을 스며들게 하고 가득 채우고 흠뻑 적십니다. 온몸 어디에도 삼매에서 생긴 희열과 즐거움이 스며들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이것 역시 가르침의 기적이라고 한다.”
제3선
“다시 희열이 빛바램으로써, 그는 평온하게 머물고 마음챙기고 알아차리며 몸으로 즐거움을 경험합니다. 성스러운 이들이 ‘평온하고 마음챙기며 즐겁게 머문다’고 하는 제3선에 들어 머뭅니다. 희열을 여읜 즐거움으로 이 몸을 스며들게 하고 가득 채우고 흠뻑 적십니다.
연못에서 나고 자라며 물 위로 솟지 않고 물속에 잠긴 채 잘 자라는 연꽃들이 있다고 합시다. 그 연꽃들은 뿌리에서 끝까지 시원한 물에 흠뻑 적셔져, 시원한 물이 스며들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이와 같이 비구는 희열을 여읜 즐거움으로 이 몸을 스며들게 하고 가득 채우고 흠뻑 적십니다. 온몸 어디에도 희열을 여읜 즐거움이 스며들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이것 역시 가르침의 기적이라고 한다.”
제4선
“다시 즐거움과 괴로움을 버리고, 앞서 기쁨과 마음의 괴로움이 사라진 것과 함께, 그는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고 평온과 마음챙김이 청정한 제4선에 들어 머뭅니다. 청정하고 밝은 마음으로 몸에 스며들게 하여 앉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머리에서 발끝까지 흰 천으로 몸을 덮고 앉아 있어서, 몸 어디에도 흰 천이 덮이지 않은 곳이 없다고 합시다. 이와 같이 비구는 청정하고 밝은 마음으로 몸에 스며들게 하여 앉아 있습니다. 온몸 어디에도 청정하고 밝은 마음이 스며들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이것 역시 가르침의 기적이라고 한다.”
위빳사나의 지혜 등
“이와 같이 마음이 삼매에 들고 청정하고 밝으며, 티 없고 오염을 벗어나고, 부드럽고 다루기 좋으며, 안정되고 흔들림 없는 상태에 이르렀을 때, 그는 앎과 봄으로 … 마음으로 만든 몸을 만드는 데 … 여러 가지 신통변화로 … 신성한 귀의 요소로 … 다른 중생들의 마음을 아는 지혜로 … 전생을 기억하는 지혜로 … 중생들의 죽음과 다시 태어남을 아는 지혜로 … 번뇌를 소멸하는 지혜로 마음을 향하고 기울인다.
그는 ‘이것이 괴로움이다. … 이것이 괴로움의 발생이다. …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 …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로 이끄는 길이다. … 이것들이 번뇌이다. … 이것이 번뇌의 발생이다. … 이것이 번뇌의 소멸이다. … 이것이 번뇌의 소멸로 이끄는 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분명히 안다. 이렇게 알고 이렇게 보는 그의 마음은 감각적 욕망의 번뇌, 존재의 번뇌, 무명의 번뇌로부터 해탈한다. 해탈했을 때 ‘해탈했다’는 앎이 있다. 그는 ‘태어남은 끝났고 청정한 삶은 완성되었으며 해야 할 일은 마쳤다. 이 세상을 위한 더 이상의 일은 없다’고 분명히 안다.
산골짜기에 맑고 투명하고 더러움 없는 연못이 있다고 하자. 물가에 선 눈 밝은 사람은 조개껍데기와 자갈과 작은 돌, 헤엄치거나 가만히 있는 물고기 떼를 보고 생각한다. ‘이 연못은 맑고 투명하고 더러움이 없다. 여기에 조개껍데기와 자갈과 작은 돌이 있고, 헤엄치거나 가만히 있는 물고기 떼가 있다.’ 이와 같이 마음이 삼매에 들고 청정하고 밝으며 티 없고 오염을 벗어나고 부드럽고 다루기 좋으며 안정되고 흔들림 없는 상태에 이른 비구는, 번뇌를 소멸하는 지혜로 마음을 향하고 기울인다.
그는 ‘이것이 괴로움이다. … 이것이 괴로움의 발생이다. …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 …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로 이끄는 길이다. … 이것들이 번뇌이다. … 이것이 번뇌의 발생이다. … 이것이 번뇌의 소멸이다. … 이것이 번뇌의 소멸로 이끄는 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분명히 안다. 이렇게 알고 이렇게 보는 그의 마음은 감각적 욕망의 번뇌, 존재의 번뇌, 무명의 번뇌로부터 해탈한다. 해탈했을 때 ‘해탈했다’는 앎이 있다. 그는 ‘태어남은 끝났고 청정한 삶은 완성되었으며 해야 할 일은 마쳤다. 이 세상을 위한 더 이상의 일은 없다’고 분명히 안다. 이것 역시 가르침의 기적이라고 한다. 께왓다여, 이것들이 내가 스스로 직접 알고 실현한 뒤 밝힌 세 가지 기적이다.”
신들과의 대화
“께왓다여, 한때 바로 이 비구 승가의 어느 비구에게 이런 생각이 일어났다. ‘땅의 요소, 물의 요소, 불의 요소, 바람의 요소인 이 네 가지 근본물질은 어디에서 남김없이 소멸하는가?’ 그는 삼매에 들어, 삼매에 든 마음에 신들에게 이르는 길이 나타나게 되었다. 그는 사대왕의 무리에 속한 신들에게 가서 물었다. ‘도반들이여, 땅의 요소, 물의 요소, 불의 요소, 바람의 요소인 이 네 가지 근본물질은 어디에서 남김없이 소멸합니까?’
사대왕의 무리에 속한 신들이 비구에게 말했다. ‘우리도 네 가지 근본물질이 … 어디에서 남김없이 소멸하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보다 더 높고 더 수승한 사대왕들이 있습니다. 그들이라면 네 가지 근본물질이 … 어디에서 남김없이 소멸하는지 알 것입니다.’
그 비구는 사대왕들에게 가서 물었다. ‘도반들이여, 이 네 가지 근본물질은 … 어디에서 남김없이 소멸합니까?’ 사대왕들은 말했다. ‘우리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보다 더 높고 더 수승한 삼십삼천의 신들이 있습니다. 그들이라면 알 것입니다.’
그 비구는 삼십삼천의 신들에게 가서 같은 질문을 했다. 그들은 ‘우리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보다 더 높고 더 수승한 신들의 왕 삭까가 있습니다. 그라면 알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신들의 왕 삭까에게 가서 물었다. 삭까는 ‘나도 모릅니다. 그러나 나보다 더 높고 더 수승한 야마천의 신들이 있습니다. 그들이라면 알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
야마천의 신들은 ‘우리도 모릅니다. 그러나 수야마라는 신이 있습니다. … 그라면 알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 수야마는 ‘나도 모릅니다. 그러나 도솔천의 신들이 있습니다. … 그들이라면 알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 도솔천의 신들은 ‘우리도 모릅니다. 그러나 산뚜시따라는 신이 있습니다. … 그라면 알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 산뚜시따는 ‘나도 모릅니다. 그러나 화락천의 신들이 있습니다. … 그들이라면 알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
화락천의 신들은 ‘우리도 모릅니다. 그러나 수님미따라는 신이 있습니다. … 그라면 알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 수님미따는 ‘나도 모릅니다. 그러나 타화자재천의 신들이 있습니다. … 그들이라면 알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 타화자재천의 신들은 ‘우리도 모릅니다. 그러나 와사왓띠라는 신이 있습니다. … 그라면 알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
그 비구는 와사왓띠 신에게 가서 물었다. ‘도반이여, 이 네 가지 근본물질은 … 어디에서 남김없이 소멸합니까?’ 와사왓띠 신은 말했다. ‘나도 모릅니다. 그러나 나보다 더 높고 더 수승한 범천의 무리에 속한 신들이 있습니다. 그들이라면 네 가지 근본물질이 … 어디에서 남김없이 소멸하는지 알 것입니다.’ …
그 비구는 다시 삼매에 들어, 삼매에 든 마음에 범천의 무리에 속한 신들에게 이르는 길이 나타나게 되었다. 그는 그 신들에게 가서 물었다. ‘도반들이여, 땅의 요소, 물의 요소, 불의 요소, 바람의 요소인 이 네 가지 근본물질은 어디에서 남김없이 소멸합니까?’
범천의 무리에 속한 신들이 말했다. ‘우리도 모릅니다. 그러나 범천, 대범천, 정복자, 정복당하지 않는 이, 모든 것을 보는 이, 모든 힘을 가진 이, 지배자, 만드는 이, 창조자, 으뜸인 이, 정하는 이, 통치자, 이미 존재한 이들과 앞으로 존재할 이들의 아버지가 있습니다. 그는 우리보다 더 높고 더 수승합니다. 그라면 네 가지 근본물질이 … 어디에서 남김없이 소멸하는지 알 것입니다.’
‘도반들이여, 그러면 대범천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비구여, 우리도 범천이 어디에 있고 어떤 방식으로 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징조가 나타나고 빛이 비치며 광명이 드러나면 범천이 나타날 것입니다. 빛이 비치고 광명이 드러나는 것이 범천 출현의 징조이기 때문입니다.’ 오래지 않아 범천이 나타났다.”
대범천의 대답
“그 비구는 대범천에게 가서 물었다. ‘도반이여, 땅의 요소, 물의 요소, 불의 요소, 바람의 요소인 이 네 가지 근본물질은 어디에서 남김없이 소멸합니까?’ 대범천이 말했다. ‘비구여, 나는 범천, 대범천, 정복자, 정복당하지 않는 이, 모든 것을 보는 이, 모든 힘을 가진 이, 지배자, 만드는 이, 창조자, 으뜸인 이, 정하는 이, 통치자, 이미 존재한 이들과 앞으로 존재할 이들의 아버지이다.’
비구는 두 번째로 말했다. ‘도반이여, 저는 당신이 범천, 대범천, 정복자, 정복당하지 않는 이, 모든 것을 보는 이, 모든 힘을 가진 이, 지배자, 만드는 이, 창조자, 으뜸인 이, 정하는 이, 통치자, 이미 존재한 이들과 앞으로 존재할 이들의 아버지인지 묻지 않았습니다. 저는 땅의 요소, 물의 요소, 불의 요소, 바람의 요소인 이 네 가지 근본물질이 어디에서 남김없이 소멸하는지 물었습니다.’
대범천은 두 번째로도 말했다. ‘비구여, 나는 범천, 대범천, 정복자, 정복당하지 않는 이, 모든 것을 보는 이, 모든 힘을 가진 이, 지배자, 만드는 이, 창조자, 으뜸인 이, 정하는 이, 통치자, 이미 존재한 이들과 앞으로 존재할 이들의 아버지이다.’
비구는 세 번째로도 말했다. ‘도반이여, 저는 당신이 범천, 대범천, 정복자, 정복당하지 않는 이, 모든 것을 보는 이, 모든 힘을 가진 이, 지배자, 만드는 이, 창조자, 으뜸인 이, 정하는 이, 통치자, 이미 존재한 이들과 앞으로 존재할 이들의 아버지인지 묻지 않았습니다. 저는 땅의 요소, 물의 요소, 불의 요소, 바람의 요소인 이 네 가지 근본물질이 어디에서 남김없이 소멸하는지 물었습니다.’
그러자 대범천은 그 비구의 팔을 잡고 한쪽으로 데려가 말했다. ‘범천의 무리에 속한 이 신들은 “대범천이 모르는 것은 없다. 대범천이 보지 못하는 것은 없다. 대범천이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은 없다. 대범천이 실현하지 못한 것은 없다”고 믿는다. 그래서 나는 그들 앞에서 나 역시 네 가지 근본물질이 … 어디에서 남김없이 소멸하는지 모른다고 말하지 않았다. 세존을 지나쳐 이 질문의 답을 밖에서 찾았으니, 그것은 그대 자신의 잘못이며 실수이다. 세존께 곧바로 돌아가서 이 질문을 여쭈어라. 세존께서 답하시는 그대로 기억하여라.’”
해안을 찾는 새의 비유
“그 비구는 힘센 사람이 굽힌 팔을 펴거나 편 팔을 굽히듯이, 범천의 세계에서 사라져 즉시 내 앞에 나타났다. 그는 내게 절을 올리고 한쪽에 앉아 물었다. ‘세존이시여, 땅의 요소, 물의 요소, 불의 요소, 바람의 요소인 이 네 가지 근본물질은 어디에서 남김없이 소멸합니까?’
나는 그에게 말했다. ‘비구여, 예전에 바다를 항해하는 상인들이 해안을 찾는 새를 데리고 배로 바다를 건넜다. 배에서 해안이 보이지 않으면 해안을 찾는 새를 날려 보냈다. 새는 동쪽으로, 남쪽으로, 서쪽으로, 북쪽으로, 곧장 위로, 그리고 그 사이 방향들로 날아갔다. 어느 방향에서든 해안이 보이면 그곳으로 날아가 돌아오지 않았다. 어느 방향에서도 해안이 보이지 않으면 곧바로 배로 돌아왔다. 이와 같이 그대도 범천의 세계에 이르기까지 찾아다녔지만 이 질문의 답을 얻지 못하여, 바로 내 앞으로 돌아왔구나.
비구여, “땅의 요소, 물의 요소, 불의 요소, 바람의 요소인 이 네 가지 근본물질은 어디에서 남김없이 소멸합니까?”라고 질문해서는 안 된다. 대신 이와 같이 질문해야 한다.’
질문과 대답
‘어디에서 물과 땅과 불과 바람이 발붙일 곳을 얻지 못하며, 어디에서 길고 짧음, 거칠고 미세함, 아름답고 추함, 정신과 물질이 남김없이 멎는가?’
‘그 답은 이러하다. 표면 없는 의식, 끝이 없고 사방으로 빛나는 것. 여기에서 물과 땅과 불과 바람은 발붙일 곳을 얻지 못한다. 여기에서 길고 짧음, 거칠고 미세함, 아름답고 추함, 여기에서 정신과 물질은 모두 남김없이 멎는다. (무더기에 속하는) 의식의 소멸과 함께, 그 각각은 여기에서 멎는다.’” [주 2]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께왓다 장자는 만족하여 세존의 말씀을 기뻐했다.
영어 번역자의 서문 — 한국어 번역
이 경은 께왓다 경(Kevaddha Sutta)이라고도 하며, 기적과 천상 존재와의 대화가 믿음과 확신의 근거가 될 수 있는지 다룹니다. 부처님께서는 그러한 경험의 실재성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가능한 모든 기적 가운데 마음을 바르게 훈련하는 가르침의 기적만이 믿을 만하다고 지적하십니다. 천상 존재들 역시 탐욕·성냄·어리석음에 매여 있으므로 그들이 전하는 정보, 특히 가르침의 기적에 관한 정보가 반드시 믿을 만한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믿음의 타당한 근거는 따랐을 때 자기 마음의 번뇌를 끝내는 가르침입니다. 마지막 이야기는 초기불교의 유머를 보여 주는 뛰어난 예입니다.
영어 번역자의 주 — 요지
1. AN 3.61 참조.
2. Viññāṇaṁ anidassanaṁ. 영어 번역자는 이 표현이 경장 안에서 별도로 설명되지 않는다고 지적합니다. 그는 SN 43의 열반에 대한 표현, SN 12.64의 어디에도 내려앉지 않는 빛의 비유, MN 49 및 SN 35.23과 연결하여 풀이합니다. 그의 해석에서 이것은 여섯 감각장소로 설명되는 연기의 의식이나 의식의 무더기와 구별되며, 색계 선정과 무색계 증득을 넘어섭니다. 그러나 시간과 공간 밖이라는 설명을 ‘영원하다’거나 ‘어디에나 있다’는 주장으로 바꾸어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 여섯 감각장소가 남김없이 멎은 뒤 무엇이 남는지 남지 않는지 추측하는 것은 AN 4.173의 경고에 따라 내려놓아야 할 문제라고 설명합니다. 상세한 논의와 인용 경전은 아래 영어 원문의 주 2를 참조하십시오.
번역 참고
이 글은 Ṭhānissaro Bhikkhu의 무료 영어 번역을 한국어로 옮긴 것입니다. 영어판에서 DN 2를 참조하도록 한 계행 등의 반복 부분과 …로 줄인 반복을 그대로 표시했습니다. 같은 수행 과정은 DN 2 한국어 발췌에서도 읽을 수 있습니다. 영어 번역자의 서문과 주는 본문과 구분했으며, 주 2는 요지입니다.
한국어 대조 자료의 경명 ‘께왓다 경’과 ‘신통의 기적·남의 마음을 알아 드러내는 기적·가르침의 기적’ 등의 용어를 참고했습니다. 대조 자료의 문장이나 주석을 전재하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게송의 viññāṇaṁ anidassanaṁ는 해석이 갈리는 표현입니다. 대조 자료는 이를 ‘알음알이라는 특별한 경지는 …’으로 옮기고 주석에서 열반으로 풀이합니다. 여기서는 영어판의 ‘consciousness without surface’를 따라 ‘표면 없는 의식’으로 옮겼습니다. 이것은 영어 번역자의 해석을 보존한 것이며, 영원한 자아나 보편 의식을 주장하는 문구로 제시한 것이 아닙니다. 마지막 행의 ‘(무더기에 속하는)’도 영어판의 괄호 설명입니다. 한국어 책의 ‘명색의 소멸’과 영어판의 ‘name & form이 멎음’은 같은 자리에 놓인 표현입니다. 제2선의 호수 비유에서 비가 내린다는 독법도 영어판을 따릅니다.
출처와 번역 안내
영어 원문: Ṭhānissaro Bhikkhu 번역, To Kevaṭṭa, Kevaṭṭa Sutta (DN 11). dhammatalks.org의 영어 본문 읽기 (새 탭).
한국어 대조 참고: 사용자가 제공한 『디가 니까야』 제1권, 「께왓다 경」(D11), 537–560쪽 사진 13장. 뜻과 용어 및 경전 범위 확인에 사용했습니다. 한국어 참고 자료의 주석은 옮겨 싣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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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 2026년 11월 4일 · NB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