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와 우리의 미래를 만들어 가는 의도

『디가자누 경』(AN 8.54)에서 부처님은 재가자의 현세 이익과 행복을 뒷받침하는 네 가지 조건을 가르치십니다. 생업에서 능력을 갖추고 부지런히 일하는 것, 정당하게 얻은 재산을 지키는 것, 좋은 벗과 함께하는 것, 그리고 수입에 맞게 생활하는 것입니다. 이 가르침은 재가 생활의 실제적인 책임을 인정합니다. 사람에게는 자신과 자신에게 의지하는 이들을 돌볼 수 있는 수단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능력을 갖추고 부지런히 일하며 책임 있게 살아온 사람에게, 그 생계를 뒷받침하던 조건이 사라진다면 어떻게 될까요?

수학과 공학 분야의 박사 학위를 가진 한 엔지니어를 생각해 봅시다. 그는 여러 해 동안 공부하며 전문성을 길렀고,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직장을 얻었습니다. 가족과 집이 있고, 주택담보대출과 자녀도 있습니다. 계속 일하면 이러한 책임을 감당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 속에서 받아들인 평범한 삶의 책임들입니다.

그는 업무를 더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AI를 사용하기 시작합니다. 결국 고용주는 AI로 그의 업무 상당 부분을 처리하게 되고, 그의 일자리는 없어집니다. 수입은 사라지지만 주택담보대출과 빚, 가족에 대한 책임은 그대로 남습니다. 그의 교육과 성실함이 사라진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가정을 부양할 수 있게 해 주던 조건은 달라졌습니다.

이 사례는 우리의 가족과 친구, 공동체 안으로 들어오고 있는 우려를 보여 줍니다. 이미 일자리를 잃고 있는 사람들에게 고통은 당장의 현실입니다. 그저 더 많은 기술을 배우라고 조언하는 것만으로는 그들의 상황을 충분히 다룰 수 없습니다. 배움은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책임이 계속되는 가운데 시간과 자원, 기회가 필요합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이 사람들을 저버린 것은 아닙니다. 능력과 성실함은 삶의 안녕을 뒷받침하는 조건이지, 변화하는 상황으로부터 우리를 완전히 보호해 주는 것은 아닙니다. 또한 실직했다고 해서 쓸모없는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인간의 가치는 고용주가 그 사람의 노동을 여전히 필요로 하는지에 따라 결정될 수 없습니다.

AI와 로봇 기술이 발전하면서, 기계가 점점 더 넓은 범위의 지적·육체적 일을 수행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앞으로 일자리 대체가 얼마나 넓게, 얼마나 빠르게 진행될지는 아직 불확실합니다. 그럼에도 그 가능성은 지금 관심을 기울여야 할 만큼 중대합니다. 사람들은 어떻게 가정을 부양할까요? 기술 발전의 이익은 어떻게 나누어질까요? 사회에 의미 있게 참여할 기회는 무엇이 남을까요?

이 질문들은 기술 발전을 이끄는 의도를 살펴보게 합니다.

탐욕은 그 결과를 감당하는 사람들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더 큰 부와 시장 지배력을 추구하게 할 수 있습니다. 성냄은 짐이나 장애물로 여겨지는 사람들에 대한 적대감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어리석음은 경제적 생산성을 인간의 가치와 혼동하게 하거나, 더 큰 편리함과 능력이 반드시 더 큰 행복과 안녕을 가져온다고 여기게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성향이 강력한 기술을 이끌면 그 결과는 개인을 훨씬 넘어설 수 있습니다. 기업은 비용을 줄이는 반면, 노동자와 가족, 공동체가 그로 인한 어려움을 떠안을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엄청난 부를 얻는 동안 다른 사람들은 재가 생활의 기본 조건을 유지하기 위해 애쓸 수 있습니다.

모든 개발자가 삼독에서 비롯된 행동을 한다거나, 부 자체가 불선한 의도를 입증한다고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AI는 유익한 목적에 쓰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살펴보아야 할 것은 AI를 어떻게 개발하고 사용하는지, 누구의 안녕을 고려하는지, 그리고 목표를 추구하면서 어떤 결과를 외면하려 하는지입니다.

이 물음은 기술을 사용하는 우리 자신에게도 해당합니다. 우리는 무엇을 구하고 있습니까? 편리함과 이익, 지위 또는 두려움이 가장 중요한 관심사가 될 때 마음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우리의 선택에 영향을 받는 사람들을 알아보고 있습니까? 자신에게 돌아오는 이익이 다른 사람에게 어려움을 만든다면, 그 이익을 다시 살펴볼 의향이 있습니까?

탐욕과 성냄, 어리석음은 너무 익숙해져서 인간 삶의 자연스럽고 피할 수 없는 바탕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습니다. 끝없는 축적은 평범한 야망이 됩니다. 적대감은 필요한 경쟁이 됩니다. 결과를 외면하는 것은 발전을 위해 치러야 하는 당연한 대가가 됩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이러한 성향을 직접 살펴보도록 합니다. 그것들은 조건에 따라 일어나며, 이해하고 약화시키고 소멸시킬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또한 보시와 자애, 연민, 다른 이의 행복을 함께 기뻐하는 마음, 평온과 지혜를 기를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커져 가는 우리의 능력이 인간의 안녕을 뒷받침하려면 이러한 선한 성품이 우리의 행동을 이끌어야 합니다.

기술의 힘이 그것을 이끄는 지혜보다 빠르게 발전할 때 우려는 특히 심각해집니다. 인간의 삶을 바꿀 수 있는 놀라운 수단을 얻으면서도, 삶을 안전하고 살아갈 만하게 만드는 조건에는 충분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미래에 대한 신뢰는 중요합니다. 자녀를 갖고 싶은 사람들도 자녀를 안정적으로 부양할 길이 보이지 않으면 망설일 수 있습니다. 출산율 감소에는 여러 원인이 있으며, 이를 단순히 AI 때문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 바탕에 있는 질문에는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우리는 사람들이 신뢰와 보살핌으로 다음 세대를 바라볼 수 있는 조건을 만들고 있습니까?

이에 대응하려면 개인의 수행과 함께 책임을 나누는 일이 모두 필요합니다.

일자리 상실에 직면한 사람에게 알아차림은 두려움과 분노, 수치심과 절망이 일어날 때 그것을 드러내어 볼 수 있도록 돕습니다. 이러한 상태를 알아보면 더 해로운 반응으로 이어지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좋은 벗과 실제적인 도움, 배움의 기회 역시 힘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수행한다고 해서 수입과 주거, 음식과 돌봄의 필요가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고용주와 정부, 공동체는 자신의 책임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전환기의 지원,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교육, 가정의 생활 안정, 그리고 기술 발전의 이익을 공정하게 나누는 일은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을 실천으로 나타내는 것입니다. 적응에 필요한 조건이 마련되어 있지 않은데 개인에게 적응하라고 요구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긍정적인 가능성도 있습니다. 기술은 지치게 하거나 위험한 일을 줄이고, 돌봄과 배움, 공동체 활동과 담마 수행에 더 많은 시간을 쓸 수 있게 할 수 있습니다. 그 가능성이 실현될지는 기술의 사용을 이끄는 의도와 제도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는 물어야 합니다. 어떤 미래를 만들고 있습니까? 누가 이익을 얻고, 누가 고통을 감당합니까? 어떤 의도가 우리의 결정을 이끌고 있습니까? 기술 발전이 인류의 안녕을 뒷받침하려면 어떤 조건이 바뀌어야 합니까?

우리는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놀라운 힘을 발전시켰습니다. 이제 그 힘을 이끄는 마음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탐욕과 성냄, 어리석음을 다루지 않는다면, 더 커진 능력은 그것들에서 비롯되는 고통을 더욱 키울 수 있습니다.

팔정도는 선한 이해와 의도, 말과 행동, 생계와 노력, 알아차림과 삼매를 기르는 길을 제공합니다. 그 수행은 우리 자신의 삶을 만들어 가고 다른 사람의 삶에 조건이 되는 선택들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과제는 고통을 알아보고, 그것을 만들어 내는 조건을 이해하며, 고통이 소멸할 수 있는 조건을 기르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앞에 놓인 책임이며 가능성입니다.

참고 경전: AN 8.54, 『디가자누 경』(Dīghajāṇu Sut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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